학교폭력 멈춰야 VS 진실은아무도몰라
목차
저는 학창 시절 수년 동안 이어진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습니다.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입니다. 당시의 저처럼 또 한 번 침묵하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지만, 용기를 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학폭 당시]
저는 굉장히 창원에서 좁은 동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가 다녔던 ㅇㄱ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120명 정도 다니는 작은 학교였습니다. 한 동네에 살았던 그들은 저보다 한 학년 위였습니다. 한 마디씩 툭툭 내뱉고 지나가는 무서운 동네 선배였기 때문에 되도록 피해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첫 폭행이 있기 전까진 그들이 앞으로 제 평생의 두려움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폭력의 시작은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학원을 마치고 나오자, 학원 건물 앞에서 그들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자신들을 비웃었다는 이유였지만, 쳐다보기도 힘든 무서운 선배였던 그들을 비웃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오해다, 그런 적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그저 폭력의 ‘명분’이 필요했던 그들에겐 제 설명은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집에 갈 수 없게 아파트 뒷골목에 붙잡아두고 저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하나, 둘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의 폭행 방식은 잔인했습니다.
제 뺨을 내려치고 복부를 걷어차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을 한 줄로 세워두고 제가 맞는 걸 보게 했습니다.
“눈 감거나 안 보면 너네도 맞는다”
가해자 네 명이 돌아가며 저를 폭행하는 모습을 친구들은 울면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한참 동안 이어진 폭행 도중 가해자들은 지켜보던 제 친구들에게 저를 때리도록 강요했습니다. 때리는 강도가 약하면 거친 욕설로 위협했고 더 지독한 폭행을 이어갔습니다.
“ㅇㅇㅇ이랑 같이 있는 거 보이면 너희도 똑같이 맞는다”
그들은 제 친구들에게 저와 앞으로 말 한마디 섞지 말고 절 전교 왕따로 만들라고 협박했습니다.
그 협박은 흥분한 상태에서 스쳐지나듯 뱉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제가 전교 왕따를 당하도록 집요하게 행동했습니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맞았습니다.
4명이 차례대로 한쪽뺨을 돌아가면서 때렸고 뺨을 때리는 소리가 찰지지 않다며 소리가 마음에 들 때까지 때렸습니다.
그렇게 반복해서 맞은 뺨에 제 입안이 터지고 볼이 부어오르면 호빵맨 같다고 한참을 웃다가 반대편 뺨도 때리자며 좋아했습니다.
맞는 도중 뒷짐이 풀리면 한 대, 소리 내면 한 대, 울면 한 대 더 맞는다며 온갖 조건과 이유를 붙여 폭행했습니다.
저는 한 대라도 덜 맞기 위해 버텨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저의 모습에 더 화가 난다 했습니다. 맞지 않으려 했던 제 노력은 그들의 ‘폭행의 이유’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폭행을 벗어날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지칠 때까지 몇 시간을 수백 대의 뺨을 맞아야 했습니다.
수십 번의 폭행이 이어지는 동안, 그들이 내내 화를 내며 분노를 쏟듯 저를 폭행했던 건 아닙니다. 때론 낄낄 웃으며, 친구와 통화를 하며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에서 폭행을 하였습니다.
제 뺨이 우습게 부풀었다거나,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옷에 찍힌 수십 개의 신발자국이 웃기다거나 예상 불가능한 일로 무거웠던 분위기에 농담이 섞이고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하면 마음속에서 희망이 솟았습니다.
'곧 멈추겠구나, 이제 집에 갈 수 있겠구나.'
하지만 오락을 하듯, 시간이 되는 한 폭력은 이어졌습니다. 특정한 사건, 하루의 기분과 저를 향한 폭력은 전혀 무관했습니다.
폭력 현장을 발견한 어른들이 경찰에 신고한다고 다가와 다그치는 일도 있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노는 거예요~”
“친한 척해라, 웃어라.”
“안 따라오면 죽는다.”
“더 맞을 줄 알아라.”
저를 데리고 도망 다니며 폭력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을 따라가지 않으면 그 선택이 다음 날, 저에게 어떤 지옥으로 다가올지 두려웠습니다.
그게 무서워서 저를 구해주는 사람들을 피해 바보처럼 도망쳐야 했습니다.
수십 번 희망이 좌절되는 동안 저는 어느새 폭행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해 봐라, 신고해도 내가 닌 죽이고 소년원 간다.”
“어디 한 번 말해봐라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 고통스럽게 할 거다.”
그들이라면 정말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두려움에 부모님, 학교, 경찰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습니다.
괴롭힘은 폭행에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밤마다 콜렉트콜로 맞으러 나오라고 수시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매일 돈을 가져오라 요구했고, 새로 산 옷과 가방을 뺏어가거나, 핸드폰을 가져갔습니다. 네이트온 원격 기능으로 제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했습니다.
수시로 불러내 그들 앞에 무릎을 꿇려 앉혀놓았고
저는 무기력하게 그들이 하라는 대로 따라야 했습니다.
때로는 놀이터 그네 앞에 세워진 채 발로 걷어 차이며
그들의 분풀이 대상이 되었습니다.
괴롭힘은 그들이 고등학교를 가기 전까지,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시작되어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현재 상황]
2022년 1월, 외면해오던 그들의 소식을 친구를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가해자 중 2명이 창원에서 케이크 가게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친구는 이 가게에서 케이크를 구매하려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알려주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선물하는 케이크, 행복한 날에 먹는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가해자 폭로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폭로 계정을 만든지 단 며칠 후 가해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 백번 상상해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학교폭력 사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시간이 흐른 지금, 그들이 나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할까. 사과를 할까,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칠까.
하지만 저에게 전달된 첫 연락은 제가 전과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동안 가해자와의 재회를 수없이 상상했지만 한 번도 제가 전과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첫 마디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웃음이 났습니다. 하나도 바뀐 게 없구나.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부모님께 알리기라도 하면 반드시 죽이겠다고 저를 똑바로 노려보며 협박하던 그 때와 달리진 게 전혀 없다는 생각에 허탈했습니다.
가해자 폭로 계정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소식은 조금씩 알려졌고 가해자 중 1명의 케이크 가게 계정 팔로워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전과자 운운하며 협박을 했던 가해자는 갑자기 케이크 가게 계정에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저에게 개인적인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은 채, 갑작스러운 글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사과 한마디 없이 사과문을 올리는 건 뭐냐며 사람들이 댓글로 항의를 하자 그제야 저에게 사과 문자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사과문은 단 하루도 지나지 않고 삭제되었고 해당 계정은 현재 비공개 계정으로 전환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대로
창원에서 케이크샵을 운영하는 가해자는 2명이고
저를 폭행했던 가해자는 4명이었습니다.
그중 사과문을 올린 가해자 외에 나머지 가해자들에게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의 연락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케이크샵을 운영하는 또 다른 가해자는
선두에 서서 저를 괴롭혔던 사람이자
가장 악랄하게 괴롭힌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제가 올린 글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기도 합니다.
가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전하는 사과를 요구합니다.
28살이 되도록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최근 주변 지인들에게 털어놓았지만 누구도 저에게 이런 아픔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시간들이 있기 전의 저는, 누구보다 밝은 아이였고 그 시간 이후의 저는, 상처를 묻어두고 애써 밝은 아이로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그 상처를 안고 밝은 아이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기도 했고 마음의 고통을 잊기 위해 제 몸을 아프게 하기도 했습니다.
왜 아프냐, 무슨 일 있냐 물어봐 주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저의 주변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작 그들은 제가 감사해하는 이유를 모른다고 말하지만 작은 호의, 작은 배려도 저에겐 큰 힘이 되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했습니다.
하지만
십 년 만에 가해자들과 마주하게 되니 그 때의 감정이 솟아오르고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아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너무 힘이 듭니다. 저는 그들이 절 괴롭힌 이유를 모른 채 지금까지 살아왔기에 무엇보다 그들의 진심을 알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면 그 시간 속의 저는 이 글 속에 남겨두고 평소의 밝은 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학교폭력은 정말 가까이에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가볍게 내밀어주는 손길 하나가 큰 힘이 됩니다.
지금도 저와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친구들이 정말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를 겪고 있는 학생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거 잘 압니다. 너무나 힘들겠지만 꼭 도움을 요청하세요. 꼭꼭 그러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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