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잘못 VS 옆 테이블 미녀 잘못
목차
아무리 봐도 내 잘못이 아닌 거 같은데 남편은 나보고 한심하대요.
그런데 진짜로 아무리 되짚어도 제 잘못 아닌 거 같아요.
그래서 이 글 그대로 보여주려고 해요. 분명 싸움은 나겠지만.
편하게 쓸게요. 지금 심정이 복잡해 간추려 못 쓰겠네요. 긴 글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이 둘 키우는 엄마임. 오늘 남편도 일찍 집에 오고 큰아이가 고기가 먹고 싶다 해서 나도 먹고 싶어서 남편을 졸랐음. 같이 큰 고깃집에 갔음.
가서 고기 시키고 남편 굽고 나는 챙겨온 이유식 작은 아이 먹이고 있었음. 간간이 큰 애가 칭얼거리면 고기 잘라서 주고 애 울까 싶어 달래고 정작 고기 한 세 점인가 먹었을 거임. 남편은 그 사이 실컷 구워서 술도 한 잔 시키고.
다행히 작은 애가 먹으면 바로 자는 편임. 큰 애도 폰 쥐어주니까 조용해지고. 고기 얼마 남지도 않아서 1인분 더 시키자 하니까 남편 투덜댐. 그래도 꿋꿋이 시킴. 원래 자기 배부르면 그걸로 끝이다 생각하는 사람이라 포기했음.
아마 여기까지면 괜찮았을 거임. 배부르게 잘 먹었다 생각하고 말았음 거임.
근데 사람 심보가 이상한가 봄. 문제는 옆 테이블에 어떤 부부가 들어오면서 말썽이 생겼음.
좌식테이블 두 개 붙여놓은 고깃집이었음. 사람도 꽤 많았고 비어진 곳이라 앉았나 봄.
남녀 둘에 애기 하나였음. 처음엔 애기 보면서 저 집도 힘들겠다 이러고 말았음. 내 고기가 먼저 나와서 굽기 시작하고 얼마 뒤에 그 쪽도 고기가 나왔음.
괜히 같은 애 키우는 집이라 시선이 갔음. 사실 심심하기도 했음. 남편은 내가 구워놓은 고기 계속 집어먹으면서 술 마시느라 바빠서 티 안나게 구경했음.
식사 때라 그런지 그쪽도 남자가 고기굽고 여자가 무슨 작은 통에 든 이유식으로 애기 밥을 먹이기 시작. 그런데 거기서부터 나랑 상황이 다름.
남자 밥 먹으면서 계속 여자한테 쌈을 싸줌. 진짜 쉴 새 없이 싸주고 여자는 당연하다는 듯 받아먹음. 가게가 좀 소란스러워 내용은 정확히 모르지만 둘이 계속 얘기도 나눔.
그러다 남자가 남은 고기를 다 굽더니 아기를 받아감. 여자는 그제야 공깃밥 열어서 밥을 먹음. 간간이 남자한테 쌈을 싸줌. 그거 바라보는데 기분이 진짜 묘했음. 같은 상황인데 비슷한 처지인데 왜 이렇게 나랑 다를까.
고기가 진짜 먹고 싶었는데 별반 맛도 느껴지지 않음. 거기다 대놓고 남편은 적당히 먹으라고 언제까지 먹을 거냐고 타박함. 자기 술 다 먹었다 이거임.
밥맛도 떨어지고 그대로 젓가락 놓으니까 또 구박함. 다 먹지도 못하면서 왜 시키냐 함. 진짜 목 끝까지 말이 새나왔는데 애들도 있고 해서 참았음.
집에 와서 애들 재우고 심란해서 맥주 한 캔 마시고 있는데 와서 시비를 검. 표정 왜 그따위냐고. 기껏 고기 먹여놨더니 사람 불편하게 왜 틱틱대냐고.
거기서 터졌음. 나 하소연했음. 당신 가게 가서 뭐 했냐고. 그렇게 배터지게 먹을 동안 내가 몇 점이나 먹었는지 알고 있냐고. 애가 둘이면 한 명 정도는 당신이 돌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것도 다 싫으면 나 먹을 때는 가만 놔둬도 되지 않냐고. 왜 매번 뭐 먹으러 가면 폰 보느라 바쁘고 술 먹느라 바쁘다가 지루해지면 빨리 일어나자고 재촉하냐고.
남편 나 어이없게 바라보더니 성질 냄. 욕은 안 함. 그냥 얼굴 시뻘개져서 기껏 생각해서 귀찮아도 좋은 데 데려가줬더니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배가 불렀다 함.
내가 옆 테이블 봤냐고 거긴 남자가 계속 쌈 싸주더라. 못 먹는 거 뻔히 아니까 챙겨주더라. 당신은 그런 거 해봤냐니까 지 밥 지가 못 먹는 건 병신 아니냐며 나보고 애냐고 물음. 왜 딴 집이랑 비교하냐며 그럼 자기도 비교하겠다며 그 여자 못봤냐고. 애 낳고도 그리 날씬하더라. 너는 뭐냐 함. 너는 나 쌈 한 번 싸준 적 있냐 함.
나 그리 뚱뚱하지 않음. 그래, 그 여자 말랐음. 그래도 나도 아직 50대 몸무게 유지하고 있음. 그리고 나 먹을 때 쌈 몇 번 싸주다가 낯간지럽게 치워라 해서 이제는 안 주고 있음. 아니, 내가 큰 걸 바랐음? 정 애 보기 싫으면 같이 좀 대화라도 하면서 놀자니까 내가 먹는 게 너무 느리다함. 당연히 느리겠지. 자기는 내가 애 먹일 때 실컷 다 처먹은 후니까.
끝까지 나보고 욕심 많은 년이라고. 배가 쳐 불렀다 함. 자기가 나한테 고기를 구워라 시켰냐 쌈을 싸달라고 했냐. 지 혼자 다 먹지도 못할 거 꾸역꾸역 시켜 먹고 살만 쪘다면서 다시는 고깃집 데려가나 보자고 문 쾅 닫고 들어가버림.
항상 이랬음. 서운해서 말하면 잔소리한다고 듣기 싫다 하고 싫은 말 하면 그대로 피해버리고 더 화를 내버림. 조곤조곤 설명도 해 보고 울기도 해 보고 화도 내 봐도 끝까지 내가 못된 년임.
그렇게 혼자 식탁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했음. 내가 나쁜 걸까. 내가 욕심 부린 걸까. 한데도 아닌 거 같음. 근데 남편 말 중에도 맞는 건 있는 거 같음. 그 부부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혼자 고기 잘 구워먹고 배부르다 기분 좋다 집에 왔었을 거 같음.
그냥 조금 많이 서러움. 진짜 서러움.
생각해 보니 결혼하기 전 내가 꿈꾸는 가족은 이런 게 아니었던 거 같은데. 나도 오손도손 대화하고 서로 입에 넣어주고 이런 걸 꿈꿨던 거 같은데. 어느새 너무 많은 게 달라진 거 같음. 하, 진짜 우울함.
맥주 마시다 쓴 글이라 횡설수설함. 생각해 보니 남과 비교한 것도 잘못된 거 같은데 기껏 기분 좋게 외식하고 온 남편이 내가 틱틱댄 걸 보면 화가 날 수도 있는 거 같은데. 이상하게 서러움.
내가 잘못했다면 남편에게 사과하려고 함. 반대라면 내 입장을 이해시켜주고 싶음. 나도 고기에 술 먹을 줄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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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글은 남편에게 보여줬어요.
계속 데면데면하다 오후 느지막이 보여줬어요. 뭐냐고 묻길래 그냥 읽어봐라 했고요. 그렇게 한참 읽던 남편 얼굴이 점점 벌게지길래 또 화를 내겠구나 생각했어요.
어제 맥주 마시며 생각나는 대로 막 써내려간 탓인지 글 중에 처먹는다라는 표현이 있었네요. 남편 그거 보고 이게 할 소리냐며 성질을 냈어요. 그래서 그것만 보지 말고 달린 댓글들을 보라고 했더니 다 쓸데없다며 꼴도 보기 싫다고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그래서 남편 핸드폰으로 주소를 보내놨어요. 한 번 읽어는 보라고. 답변도 없고 연락도 없고 해서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몇 시간 뒤에 전화가 왔네요.
받으니까 꽤 시끄러웠어요. 이미 술은 잔뜩 취했고요. 대충 읽어봤다, 아무리 그래도 욕 먹이니까 좋냐, 그놈의 쌈이 뭐라고 겨우 먹는 걸로 이러냐, 알았다, 다음에 싸주겠다. 네 말이 맞다, 미안하다 이러다가 다시 화내다가 또 비꼬다가 미안하다 했다가. 더 뭐라 뭐라 했는데 잘 안들렸어요.
남편 술버릇이 아무 말이나 하는 거예요. 어차피 내일 기억도 못할 일이라 잠자코 듣고만 있었더니 그냥 끊어버리네요. 그래도 댓글을 어느 정도 읽어보기는 한 거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조만간 맨정신일 때 다시 대화 나눠보려구요.
전화 끊고 집안일 대충 해 두고 앉아서 댓글들 하나하나 읽어보기 시작했어요.
조금 이상했어요. 남편이 내가 서운한 게 이상한 거다 하니까 조언을 얻고 싶어 올린 글인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같이 화내주실지 몰랐어요.
식당에서도 집에서 싸우면서도 아까 전화 받으면서도 괜찮았는데 오히려 댓글 읽으면서는 오랜만에 울어 봤네요. 지금 속이 다 시원해요. 정말로 감사드려요.
지금은 작은 애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조금 개월수만 차면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해요. 그래야 할 거 같아요.
아, 그리고 애를 맡기라 하는데 큰 애가 아빠한테 가기 싫어해요. 작은 애는 하도 손길이 거칠어서 제가 불안해서 못 맡겼어요. 이제는 그 마음 좀 내려놓고 작은 애라도 챙기게 해 볼게요.
그리고 결혼 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닌 사람이었어요. 좀 무뚝뚝하고 쌈 다정하게 안 먹여줘도 익은 고기는 항상 제 앞에 먼저 덜어주곤 했었어요. 점차 바뀌고 바뀌다 오히려 제가 점점 길들여진 거 같아요. 데려가줬다... 이 말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는데 전 조금 충격 받았어요. 그건 서운하지도 않고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들었거든요. 은연중에 관계가 보였던 거였네요.
다들 답답해 하시는데 당장 속시원한 얘기가 없어서 죄송해요.
그냥 앞으로 제가 제 자신을 좀 더 챙길게요. 항상 셋째까지 낳자고 하는데 그건 절대 못하겠고 빨리 다시 직장 구해서 애들 키우며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계획을 짜봐야겠어요. 다음 주말엔 무슨 소리를 듣든 애들 맡기고 혼자 외식하고 올래요.
여러 말씀 남겨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제가 몰랐던 얘기가 정말 많았어요. 진짜진짜 감사합니다. 가족보다 따뜻한 님들, 복 많이 받으세요.
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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